행복/돈/인식/진리/의사결정/생각/심판자/테스트/현실/목표설정/실행 같이 중요한 얘기가 많았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번엔 연필로 써서 정리하며 읽어내려갔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중요한데 삶의 목적은 누구보다 확고하고 뚜렷해 보인다. 거의 모든 글에는 '행복'이 등장하고, 그렇듯 그의 삶의 이유는 당연히 '행복'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된 목적이다. "행복해야지" 하고 전공과를 선택하지 않았던 나에 비해, 그는 꽤 어린 나이에도 '행복'하려고 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길로 가보고 그가 한 생각도 나는 너무 신기하다. (책을 읽어서 똑똑한 게 아니라 아무래도 처음부터 그냥 똑똑했다.) 철학을 배우는데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 역시 행복하지 않고, 90세에 이른 철학자가 행복해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철학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행복은 '돈'이 아닌 '인식'에 달려있어.
'인식'을 잘하기 위해선 똑똑해져야 해.
똑똑한 '의사결정'을 통해 '진리'에 이르면 행복해질 거야.
그렇게 들어온 철학의 세계인데 그게 또 아니네...
(여기가 다르다. 그냥 때려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철학은 행복에 도달하는 '좋은 도구'가 되지 못할까?
그는 철학이 아닌 심리학에서 행복에 이르는 법을 찾은 것 같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을 알아야 했다. 인간은 철학을 배운다고 진리에 도달하지 않는다. 애초에 진리를 추구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인간이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에 상관없이 그냥 바꿀 마음이 1도 없다.
심판을 구해야 한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때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리에 가까워진다. 내가 맞다고 믿는 생각을 바꾼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인간이지만, 적극적으로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심판을 찾으면 된다.
발견한 정말 공정한 심판은 바로 사업,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 심판이 내린 결과에 따라 자신이 믿던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이런거다.
책을 읽고 → 생각해서 → 목표를 잡는다 → 그런데 실패했다 → 다시 책을 본다 → 다시 생각해서 → 목표를 잡았는데 → 목표를 이룬다 → 그 생각은 그럼 맞았다 →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 (반복)
정리해보니 스스로 느끼기에도 저 방법이면 정말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진리'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닿고, '현실'이라는 너무나도 피부에 와닿는 세계에서, 작든 크든 심판이 내가 이겼다고 하니까 말이다. 졌을 때에도 다음엔 이김을 기약하지 않을 수 없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회사를 나왔다. 아마 행복이 회사 밖에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 밖에서 반드시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고 그 말이 글쓴이만큼이나 이제는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다.